지난 주말,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가 지나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고 느꼈겠지만 요즘은 절기가 계절을 설명해주지 못하는 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위는 더 빨리 찾아오고, 비는 한꺼번에 쏟아지고, 우리가 알고 있던 계절의 질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그렇게 변해가는 기후 속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석유 개발 앞에서 다시 생존 위기에 놓인 작은 도마뱀,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목숨을 잃은 멸종위기 새끼 사자,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할 돌봄과 생명의 관계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기후위기는 숫자와 그래프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라지는 서식지에서, 뜨거워진 숲에서,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식탁 위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이야기들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연결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FROM.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트럼프가 또?"...20년 싸워 얻은 보호 지위 잃는 멸종위기 도마뱀
미국에서 최근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게 된 작은 도마뱀 한 종이 다시 위기에 놓였습니다. 바로 산쑥도마뱀인데요. 미국 텍사스 서부와 뉴멕시코 일부에만 사는 이 작은 파충류는 2024년 미국 정부로부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이 보호 조치를 다시 검토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산쑥도마뱀은 몸길이 6~7cm 정도로 작지만 생태적으로는 매우 특별한 종입니다. 특정 모래언덕 생태계에서만 살아가는 서식지 특화종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동 능력이 매우 낮아 도로 하나, 시추 시설 하나만 들어서도 개체군이 쉽게 고립된다는 점입니다.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 종을 취약(VU)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미국 최대 산유지대인 퍼미안 분지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미국 원유 생산의 핵심 지역인데 석유·가스 개발이 확대되면서 도마뱀 서식지가 빠르게 파괴돼 왔습니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은 이미 서식지의 47% 이상이 기능적으로 사라졌다고 판단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보호 지정 과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며 재검토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이 싸움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게 아닙니다. 환경단체들은 2002년부터 보호 지정을 요구해왔고 20년 넘는 공방 끝에 겨우 보호를 받게 됐는데요. 다시 석유 개발과 생물다양성 보호 사이에서 도마뱀의 운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멸종위기종 새끼 사자 8마리가 잇따라 죽으면서 한때 감염병 확산 우려가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진드기를 통해 감염되는 혈액 기생충 질환인 바베시아증이 사망 원인으로 의심됐는데요. 하지만 부검 결과 예상과 달리 진짜 원인은 감염병이 아닌 폭염이었습니다.
숨진 동물은 아시아사자 새끼들이었습니다. 당시 인도 구자라트 지역에는 40도 안팎의 극심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인도 당국은 열 스트레스와 탈진 때문에 면역력이 약한 새끼 개체들이 폐사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말 그대로 더위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된 셈입니다.
아시아사자는 현재 야생에서는 인도 구자라트주에만 남아 있는 희귀종입니다. 한때 중동과 인도 전역에 살았지만 사냥과 서식지 감소로 급격히 줄었고 현재 IUCN에서는 위기(EN)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올해 조사 기준 야생 개체 수는 891마리까지 늘었지만 한 지역에 집중돼 있어 감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전체 개체군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멕시코에서는 폭염으로 고함원숭이들이 집단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야생동물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멸종위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특정 동물이 사라지는 장면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김효정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조교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멸종은 단순히 한 종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해온 ‘돌봄의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그가 주목한 건 뜻밖에도 화려한 야생동물이 아니라 토종씨앗이었습니다.
토종씨앗은 단순히 오래된 씨앗이 아닙니다. 한 지역의 기후와 토양, 계절 변화 속에서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살아남으며 축적된 생태적 기억입니다. 특히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같은 극단적 기후 속에서도 살아남은 씨앗을 선별해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기후 적응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씨앗 보존이 오랫동안 여성농민들의 손에서 이어져 왔다는 점입니다. 씨앗을 보관하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고,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는 일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었지만 사회는 이를 노동이 아니라 당연한 돌봄으로 여겨왔습니다. 김 교수는 이런 역할을 생태 돌봄 노동이라고 부르며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그 가치를 보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멸종위기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씨앗이 사라지고, 수분곤충이 줄고, 토양이 약해지는 일은 결국 인간의 먹거리 시스템과 생존 조건까지 흔듭니다. 김 교수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건 더 빠른 성장이나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돌보고 공존하는 연결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기후위기의 해답은 기술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오래된 가치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