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친, 어느덧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4월입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마음이 설레기도 하지만 요즘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기도 합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알고도 외면하고 싶었던 지구 곳곳의 긴박한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멀리 중동에서 들려오는 총성이 어떻게 우리 집 앞 마트의 종량제 봉투를 사라지게 만들었는지, 전쟁이라는 비극이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배출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뜨겁게 위협하고 있는지 그 연결고리를 짚어봤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우리 곁의 식물들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식물학자의 인터뷰도 전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지구 반대편의 사건들, 발밑의 작은 생명들과 연결돼 있습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소식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푸른 행성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FROM.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전쟁은 탄소를 남긴다...새로운 위협 '전쟁 배출'의 실체
전쟁은 인명 피해만큼이나 지구 환경에도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최근 전쟁이 유발하는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떠올랐어요. 조사에 따르면 특정 군사행동이 시작된 지 단 2주 만에 배출된 탄소가 한 국가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을 정도라고 하니 전쟁이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또 다른 주범이라는 사실이 정말 실감나지 않나요?
전쟁 중 발생하는 탄소는 단순히 전투기나 탱크 연료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랍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이에요. 수만 동의 건물이 무너지고 불타면서 엄청난 양의 탄소가 뿜어져 나오고 유전 시설이나 연료 저장고에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환경 재앙으로 이어지죠. 과거 걸프전 당시 불타는 유전에서 하루에만 수백만 톤의 탄소가 배출됐다는 기록은 전쟁의 파괴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잘 보여줍니다.
전쟁의 영향은 총성이 멈춘 뒤에도 계속됩니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는 ‘재건 과정’에는 많은 양의 시멘트와 철강이 사용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탄소가 실제 전투 중 배출량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고 해요. 결국 전쟁은 시작부터 끝, 그 이후의 복구 단계까지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거대한 ‘탄소 배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군사 활동으로 인한 배출량이 국가 간 기후 협약이나 통계에서는 ‘보안’을 이유로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측정되지 않는 위험은 관리하기 어렵기에 이제 군사 부문의 탄소 배출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지구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때입니다.
요즘 마트나 편의점에서 종량제봉투 구하기가 부쩍 어려워졌는데요. 단순히 물량이 부족한 줄만 알았던 이 현상의 뒤에는 사실 중동 전쟁이 있습니다. 전쟁 여파로 플라스틱과 비닐의 주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우리 일상과 밀접한 쓰레기봉투가 사라지는 이른바 ‘종량제봉투 대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핵심 원료인데 우리나라는 이 나프타의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고 그중 상당 부분을 중동에 기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같은 주요 보급로가 불안해지자 정부가 급히 수출 통제와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섰지만 현장의 품귀 현상을 잠재우기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들은 “쓰레기봉투 하나 마음대로 못 사는 현실이 당황스럽다”며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경제가 얼마나 화석연료에 취약하게 매여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합니다. 외부 변수가 생길 때마다 일상이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결국 ‘석유 의존형 경제구조’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죠. 단순히 대체 수입처를 찾는 임시방편보다는 석유 기반의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대란은 우리가 기후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경제적 생존을 위해서라도 ‘탈플라스틱’과 ‘저탄소 경제’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 곁의 종량제봉투가 던진 이 묵직한 메시지를 통해 화석연료와 결별하는 미래를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그 높은 절벽 위, 나도풍란이 붙어있던 감탕나무 줄기가 톱으로 동강 나 있더군요. 2005년 12월 가거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야생에 남은 마지막 개체였다고 추정됩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식물분류학자로 살아온 40년.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의 기억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초상에 가깝습니다. 특히 나도풍란은 그에게 인간의 탐욕으로 자생지에서 영영 자취를 감춘 식물로 기억됩니다. 기후위기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 손에 의한 직접적인 파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4000여 종류의 식물 가운데 10퍼센트에 해당하는 300~400종류가 멸종위협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식물 멸종의 가장 큰 원인은 서식지 파괴와 과도한 채취입니다. 특히 희귀한 난초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자생지가 통째로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구에는 약 180만 종의 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인간은 그중 겨우 180만 분의 1 지분을 가졌을 뿐입니다. 식물 한 종, 동물 한 종의 삶이 인간의 삶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